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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3. 2. 15. 19:50

 

 

 

 

 

1. 더 이상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정언명령에 따라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말들이 이내 범람하고 만다. 오늘날 비평가랍시고 펜대를 놀리거나, 책과 인문학이 소비되는 풍토에 관한 인상적이고  개인적인 몇 구절을 읊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려는 이들의 비윤리적인 태도를 비판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비평은 사장되었다. 인문학은 신자유주의체제에 걸맞춰 상품으로 재편되었다. 이들은 가끔 이런 태세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는다. 인문학의 컨텐츠화에 대한 탈경제적인 저항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토로한다. 모든 것이 경제 지수로 환원되어 사고되는 시대의 헤게모니로부터 인문학을 떼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언어를 논하고 철학적 체계를 정립하는 작업은 과연 인류 역사의 이행을 추동하였던 보이지 않는 실재인 경제와 본질적으로 유리되어 있는 인간 고유의 무엇인가? 인문학을 세우는 일, 이론은 어떤 형식으로든 역사와 관계맺어 왔다. 이 관계맺음의 방식이 바로 경제다. 주어진 사회경제적 입장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순수한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옳은가? 자본주의가 인문학을 몰아냈으며 새로운 질서를 가져왔다고 탄식을 내뱉을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물신화된 인문학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먼저다. 저항은 차라리 가장 경제적인 것의 한복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2. 죽음충동에 대하여 사실 따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버티고 또 버티는 수 밖에. 단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원한다. 끊임없이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통해서만 내가 딛고 있는 땅의 견고함을 느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확실히 말하건대, 너는 재앙이다. 모든 인간관계를 떠나 고립된 외계의 도시에 나혼자 안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스마트 기기와 sns는 타자와의 모든 거리를 사실상 소거해버림으로써 인간을 고독의 굴레 속에 가둬놓았다. 언제든 발신은 가능하지만 수신의 항구적인 상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인간에게 얼마나 절망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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