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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2. 6. 30. 01:02

 

 

 

 

 

 

"...우리 문명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는 아직도 살인을 실행하고 사실상 살인을 명령한다." -프로이트

 

 

-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적 경구,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라는 주장이 현대에 이르러 역설적인 부활을 꾀하고 있음을, 그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활자에서부터 브라운관으로, 스크린 너머로, 모니터 너머로까지 확장된 유혈 낭자한 컨텐츠와 예술, 그리고 우리의 삶을 떠올려보라. 연쇄 살인마를 다룬 스릴러 영화와 추리소설, B급 고어물과 스플래터 무비, 최근 들어 브라운관에까지 등장하기 시작한 좀비 드라마의 출현은 우리의 일상을 자극하는 유희의 스펙터클이 된지 오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좀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뉴스를 타전받았다. 오스카 와일드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지만, 삶이 예술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 모방은 점점 더 잔혹한 방식으로 현상하는데 몰두한다.

 

- 우리는 정상성의 기준을 바로세워야한다.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인 험난한 지형의 생태계를 아슬아슬하게 버텨나가는 오늘날의 인류에게 세계는 불가해한 상식을 요구한다. 당신은 사회의 구성원이자 구성원이 아니라는 포함과 배제의 논리에 복무할 것. 더이상 세계의 지침에 의존하지 않는 이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정상인이다. 원자화된 근대의 인간, 추락하는 경제지표는 나의 주머니 사정과 관련해서만 의미있는 것이고, 바다 너머 어디선가 전쟁의 포화에 희생되는 누군가가 있음 따위가 나의 단잠을 방해할 요소가 되지 못하는, 철저히 사회와 유리되어 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은 전통적인 의미의 정상인이다. 사회는 어딘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강박증자, 신경증자, 히스테리증자를 비정상인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정상인이라 불릴만한 정신 세계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의 정신이 역사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 온갖 유해한 것에 대한 중독,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무차별한 폭력 등은 세계가 처한 총체적 곤경에 대한 징후이다. 이 징후를 대변하는 자들이야말로 정상인들이다.   

 

- 그렇기 때문에, 영화 shame이 그리는 인간 군상의 형상은 어딘가 서글프다. 이 영화는 신체와 괴리된 정신의 항구적인 불능 상태를 가리킨다. 그는 계속해서 성을 구매하고 또 전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결핍을 지탱한다. 물신화된 섹스라는 환상을 통해서만 그는 세계와 관계맺을 수 있다. 그는 누군가 말했듯이 "섹스 때문에 사랑이 불가능해진"시대의 전형인 것이다. 후에 그는 어떤 존재의 침입을 통해 수치라는 균열과 붕괴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영화에 일말의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수치를 모르는 자의식이 타인과의 마주침이 불러온 균열을 통해 어쩌면 떨어져나간 영혼의 재생가능성을 꿈꿀 수 있게되었다는 것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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