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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9. 11. 18:54





- 더이상 전통이 유의미한 것이 아니게 되버린 한국에서 -건축의 생태계를 떠올려보라. 오래된 것은 재개발되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대상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이 민족은 역설적이게도 일년에 두어번 도래하는 명절을 사라지는 전통의 정기를 조금이라도 고취시키고자 하는 시간으로 삼는다. 하지만 실상 이 시간은 서로에게나 고통만 가중시키는데 급급한 최악의 시간인데도 모두가 이 명절을 기념하지 못해 안달이다. 이런 고통의 시간을 나누는 것으로 이들은 몸 속에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명절에 근친살인과 폭력이 자행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 우엘벡은 단지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인간의 고독을 타이핑하는 것에 매진하지 않는다. 그의 고독은 만연한 인간소외와 도착적 페티시즘을 빌어 현현한다. 이 물신과 소외를 배양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엘벡이 겨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물음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뒤늦게 혹은 마지못해 수여된 공쿠르는 일찍이 우엘벡의 세계관이 집약된 <소립자>에 주어졌어야 할 영예였다. 
 그는 새로운 소설 <지도와 영토>에서 아도르노식 제스처로 암약하는 자신, 미셸 우엘벡을 등장시킨다. '미셸 우엘벡'과 주인공 '제드'는 소설이며 사진이며 회화며 비디오아트며 예술이라 참칭되는 모든 매체가 일개 공산품으로서 소모되는 사회에 대한 메타포다. 그렇다면 우엘벡은 이제는 너무나 상투적인 수사에 불과하게 되어버린 이 문화산업 내에서의 자본과 예술의 공모관계를 폭로하려는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 것인가? 모든 가치가 일회적인 공산품으로서 전화해버린 사회에서는 하등 예술조차도 그러한 운명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만이 온전한 진실이다. 사상과 언어는 계속해서 대체될 것이다. 또한 이후에, 더이상 사회에 화폐가치라는 물신이 부재하게 되더라도 또다른 형태의 물신은 연속적으로 도래할 것이다. 사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물신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다 읽은 후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 짧고 명확한 의사전달을 종용하는 sns에서 나의 고독과 취향을 만 천하에 전시해봤자 그것은 그저 추문에 불과한 일이다. 때문에 sns를 더이상 이용하지 않기로 했지만 이 여파로 블로그 사용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나의 게으름이다. 무엇보다 소화하는 텍스트의 분량, 딱 그만큼이나 나는 점점 더 사유하는 인간과 거리가 먼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더이상 무언가를 공유할 수 없는 인간은 섣불리 말하자면, 학문을 할 수 없다. 사유가 언어적 판본으로서 생산되는 것이 불가능한 때. 어쩌면 내게 필요한 그 무엇은 차라리 어떤 강제적 개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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