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816

from 짧은말 2011. 8. 16. 13:06




 




오늘날 정신적 무성애자로서 유예된 삶을 지속한다는 것은 세속적 안정을 포기하는 것과 동시에 더이상 사회에서의 어떠한 지위도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돈을 더 벌지 못하느냐, 남들과 같은 인생의 경로를 밟지 않느냐하는 타박에 불과한 물음들, 혹은 제도의 바깥에서 그들과 같은 책을 읽고 생각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경멸이 뒤섞인 물음들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선택적 침묵이다. 언어는 점점 줄어들고 생각은 부단히 뇌릿속을 범람한다. 예외적 존재는 언어를 박탈당한다. 탄생부터 소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은 끊임없는 인정투쟁의 순간으로 도배되어 있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적 층위의 정체성을 가르는 것 또한 인정 투쟁의 일환이다. 이 치열한 투쟁의 장에서 조금이나마 비켜서는 행위는 허용 불가능한 일탈로 간주된다. 곧 예외적 존재가 되어 당신은 언어를 상실하는 것에 이른다. 비동일성에 근거한 저항은 세련되지 못한 핑계로 조롱받는다. 최근의 제도권에 젊은 열정을 투척하는 일이 바람직한가 하는 물음은 닿기도 전에 소거된다. 이쯤되면 차라리 언어를 박탈당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옳다라고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더이상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된 상황에 놓여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바꿔말하자면, 공통감각에 호응 불가능한 거대한 결핍이 신체와 정신을 차지한 채, 경제적 논리만이 그 텅빈 곳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기적 감각이라는 것은 네게 얼마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일인가. 그리하여 마음에 관한, 합리적 경제주의를 일관하다 결핍을 자각할 수 있는 신경조차도 끊긴다면 그것은 더더욱 반겨맞이해야 할 무음의 세계가 아닌가. 노이즈도, 혼란을 야기하는 어떤 음성도 네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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