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말'에 해당되는 글 67건

  1. . 2011.09.27
  2. . 2011.09.23
  3. . 2011.09.20
  4. .. 2 2011.09.11
  5. M의 신간 2011.09.07
  6. . 2011.08.28
  7. 110816 2011.08.16
  8. m83, Midnight city 2011.07.20
  9. . 2011.06.29
  10. . 201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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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9. 27. 08:14




-추문을 폭로하고 죄악의 단죄를 촉구하는 일은 어느새부턴가 예술의 책무가 되어버린 듯 하다. 폭력의 즉각적인 현시를 통해서만 가능한 대중의 계몽을 영화는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시각화된 스펙터클을 목격한 후 '계몽된' 주체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면서 소리높여 항변하기 시작한다. 마치, 이런 추문이 과거 언론에 의해 공표된 적이 없었으며 자신들의 무지함은 언론의 은폐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당연하다는 듯이. 잔혹함의 비전은 가히 근대성의 병리적 현상이라 불릴만한 개인주의적인 모종의 합의에서 탄생했다. 반인륜적이며 반인도주의적인 추문의 원환은 사회의 이탈자들에 의하여 완성된 것이다. 이탈자들이 저지른 범죄와 사회의 건전한 일원인 나 개인은 전혀 관계된 바가 없다는 인식이 관념화된 상태에서 일상의 처참함이 타전된다. 그리고 진보한 자유민주주의의 사회에서 이러한 추문이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는 듯이 행동을 개시한다. 왜 이 땅은 영화를 부조리를 고발하는 매개쯤으로, 그리고 그것이 다분히 정치적인 것을 수반하는 것처럼 조명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수년이나 지나서, 피해자의 상처를 헤집으면서까지 자신의 도덕적 자명함을 정립하려 발버둥치는 것인가.

-여전히 그의 글이 위로가 된다는 사실은 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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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9. 23. 12:38

 


- 흡사 인간이 쏘아올린 별 마냥 빛을 발하며 우리 머리 위를 떠돌던 인공위성이 우주 폐기물이 되어 지구로 추락하는 중이라는 뉴스가 21세기에는 그 어떤 픽션보다도 낭만적이다. 오늘날 우주의 소멸과 파국, 종말을 의미하는 언어만큼 아름다운 서사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파국은 이후의 새로운 시작을 예고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가장 진보적인 어떤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가 품는 기대감만큼이나 세계의 끝은 너무나 찬란하고 매혹적인 외양을 지닌다. 이 21세기식 세계의 끝은 더이상 시인의 언어나 희곡 등을 빌어 현전하지 않는다. 대개는 영화 판의 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로 재현되지만 실제로는 나날이 몰락해가는 경제지수나 평온을 가장한 보이지 않는 폭력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식자들에게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도록 할 뿐이다. 현대의 낭만이 주조되는 양식은 실존의 영역이 분쇄되는 과정에서 비롯한다. 스크린 너머의 파국을 감상하는 안락함의 자세야말로 낭만을 즐기기 위한 메뉴얼의 첫번째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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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9. 20. 23:48





- 오늘날 트렌드의 기수가 되는 일은 실로 역사적 인간에 한걸음 다가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시각각 타전되는 뉴스와 이슈에 귀기울일 줄 알고 요즘 잘나가는 책이 무엇인지 정도는 꿰뚫고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트렌디한 교양인으로 나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 시대의 교양인은 바로 유행에 능숙한 이들을 정의하는 개념이다. 현대인들은 유행을 체감하는 것으로 사회와 관계맺고 있다는 인식을 구축하게 된다. 마르크스의'불구화한 인간'은 생을 영위하는 방법론적 태도로서 재전유되고 있다. 여전히 당신이 사회적 인간일까 하는 물음에 사로잡혔다면 가장 손쉽게 내놓을 수 있는 실질적인 해답이란 유행하는 최신 전자기기와 의류를 구입하고 오픈된 공간에 나를 전시하라가 될 것이다. 삶의 모든 가치를 보편적 허위를 구가하는데 중점을 두는 사람은 그야말로 유행의 첨병이며 동시에 더할나위 없는 사회의 착실한 구성원인 셈이다.

- 이제 화요일이 지났을 뿐인데 고단함이 절정에 다다른 목요일같다. 항상 허덕이는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 가끔 창이 넓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새벽의 푸르름이 방안을 잠식하는 그 순간을 호흡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순간과 " the sea of memories "라는 pallers의 앨범 제목은 분명히 닮아 있다. 가장 인상 깊은 곡을 올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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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9. 11. 18:54





- 더이상 전통이 유의미한 것이 아니게 되버린 한국에서 -건축의 생태계를 떠올려보라. 오래된 것은 재개발되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대상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이 민족은 역설적이게도 일년에 두어번 도래하는 명절을 사라지는 전통의 정기를 조금이라도 고취시키고자 하는 시간으로 삼는다. 하지만 실상 이 시간은 서로에게나 고통만 가중시키는데 급급한 최악의 시간인데도 모두가 이 명절을 기념하지 못해 안달이다. 이런 고통의 시간을 나누는 것으로 이들은 몸 속에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명절에 근친살인과 폭력이 자행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 우엘벡은 단지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인간의 고독을 타이핑하는 것에 매진하지 않는다. 그의 고독은 만연한 인간소외와 도착적 페티시즘을 빌어 현현한다. 이 물신과 소외를 배양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엘벡이 겨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물음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뒤늦게 혹은 마지못해 수여된 공쿠르는 일찍이 우엘벡의 세계관이 집약된 <소립자>에 주어졌어야 할 영예였다. 
 그는 새로운 소설 <지도와 영토>에서 아도르노식 제스처로 암약하는 자신, 미셸 우엘벡을 등장시킨다. '미셸 우엘벡'과 주인공 '제드'는 소설이며 사진이며 회화며 비디오아트며 예술이라 참칭되는 모든 매체가 일개 공산품으로서 소모되는 사회에 대한 메타포다. 그렇다면 우엘벡은 이제는 너무나 상투적인 수사에 불과하게 되어버린 이 문화산업 내에서의 자본과 예술의 공모관계를 폭로하려는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 것인가? 모든 가치가 일회적인 공산품으로서 전화해버린 사회에서는 하등 예술조차도 그러한 운명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만이 온전한 진실이다. 사상과 언어는 계속해서 대체될 것이다. 또한 이후에, 더이상 사회에 화폐가치라는 물신이 부재하게 되더라도 또다른 형태의 물신은 연속적으로 도래할 것이다. 사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물신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다 읽은 후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 짧고 명확한 의사전달을 종용하는 sns에서 나의 고독과 취향을 만 천하에 전시해봤자 그것은 그저 추문에 불과한 일이다. 때문에 sns를 더이상 이용하지 않기로 했지만 이 여파로 블로그 사용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나의 게으름이다. 무엇보다 소화하는 텍스트의 분량, 딱 그만큼이나 나는 점점 더 사유하는 인간과 거리가 먼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더이상 무언가를 공유할 수 없는 인간은 섣불리 말하자면, 학문을 할 수 없다. 사유가 언어적 판본으로서 생산되는 것이 불가능한 때. 어쩌면 내게 필요한 그 무엇은 차라리 어떤 강제적 개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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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 신간

from 짧은말 2011. 9. 7. 17:50



블랑쇼에게 카프카란 존재가 있었다면, 내게는 우엘벡이 있다고
감히 말한다. 손꼽아 기다린 이 책을 방금 주문했다. 세계의 모든 것을 우회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그의 소설에서 사태의 촉발은 사실 '죽음'에서 기원한다. 염세와 허무로 얼룩진 인간의 욕망과 이 욕망을 파생시키는 자본주의적 현실태와 더불어 그의 전 작품을 지배하는 공통적인 키워드는 '죽음'이다. 극 중의 모든 인물들은 이 '상실'을 견디기 위한 신경증을 앓는다. 그리고 우엘벡은 택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이 정경을 소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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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8. 28. 17:30








불꽃 아래 재처럼 누우면서 나는 단념했다.
아니다. 나는 잔다. 그리고 밤의 권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깨어나리라는 것을 어린 아이처럼 배운다.
-폴 엘뤼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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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16

from 짧은말 2011. 8. 16. 13:06




 




오늘날 정신적 무성애자로서 유예된 삶을 지속한다는 것은 세속적 안정을 포기하는 것과 동시에 더이상 사회에서의 어떠한 지위도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돈을 더 벌지 못하느냐, 남들과 같은 인생의 경로를 밟지 않느냐하는 타박에 불과한 물음들, 혹은 제도의 바깥에서 그들과 같은 책을 읽고 생각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경멸이 뒤섞인 물음들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선택적 침묵이다. 언어는 점점 줄어들고 생각은 부단히 뇌릿속을 범람한다. 예외적 존재는 언어를 박탈당한다. 탄생부터 소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은 끊임없는 인정투쟁의 순간으로 도배되어 있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적 층위의 정체성을 가르는 것 또한 인정 투쟁의 일환이다. 이 치열한 투쟁의 장에서 조금이나마 비켜서는 행위는 허용 불가능한 일탈로 간주된다. 곧 예외적 존재가 되어 당신은 언어를 상실하는 것에 이른다. 비동일성에 근거한 저항은 세련되지 못한 핑계로 조롱받는다. 최근의 제도권에 젊은 열정을 투척하는 일이 바람직한가 하는 물음은 닿기도 전에 소거된다. 이쯤되면 차라리 언어를 박탈당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옳다라고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더이상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된 상황에 놓여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바꿔말하자면, 공통감각에 호응 불가능한 거대한 결핍이 신체와 정신을 차지한 채, 경제적 논리만이 그 텅빈 곳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기적 감각이라는 것은 네게 얼마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일인가. 그리하여 마음에 관한, 합리적 경제주의를 일관하다 결핍을 자각할 수 있는 신경조차도 끊긴다면 그것은 더더욱 반겨맞이해야 할 무음의 세계가 아닌가. 노이즈도, 혼란을 야기하는 어떤 음성도 네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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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83, Midnight city

from 짧은말 2011. 7. 20. 11:11

 


 



실질적으로 체험되지 않은 과거를 회상하도록 하는 음악은 일상의 악무한 속에서 폐기되어가는 정신의 패착을 지연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나는 80년대에 태어났고 유년기에 소닉유스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에 열광할 수 없었으며 그것을 접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자라났다. 그러므로, 2011년에 m83을 듣는다는 것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거칠게 써갈긴 노이즈의 서정시를 다시 읽어내려가는 것과 같다. m83은 여전히 마블발적 어법으로 그가 이룩한 슈게이징의 영역에 머물기 위하여  21세기적 세련미로 복고적 이질감을 정제하며 또 연마한다. m83은 그 영토에 계속 거주하여야만 한다. 

 Midnight City, 감정의 동요가 진행되는 밤의 어스름함이 물러가고 해가 뜨는 순간 모든 것이 정리되듯, 순간의 안정제는 트랙이 정지하는 동시에 약효를 상실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피치포크 따위의 매거진 등을 뒤지고 새로운 음악이며 밴드를 찾기에 혈안이 되는 것이다. 실로 무의미한 검색이다. 그 어떤 유의미한 행위로도 과거의 나를 만회할 수 없다. 또다시 밤은 찾아들고 새벽의 동이 터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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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6. 29. 11:03

 



Edward Hopper Took the Subway







-12월 31일 밤은 힘들었다. 마치 유리벽이 부서지듯이 내 속에 있는 무언가가 부서져 버리는 것을 느낀다. 분노에 사로잡혀서, 뭔가 하지 않읍면 안되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걸어다닌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게는 이 모든 시도들이 이미 실패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패, 사방에 실패만이 널려 있다. 오직 하나 자살만이, 닿을 수 없는 채로 저 건너편에서, 반짝거리며 내 마음을 끈다. 자정 무렵에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진 길과 같은 것을 느낀다. 내면에서도 무언가가 고통스럽게 꿈틀거린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은 전부 혼동하고 있는 거예요. 모파상의 광기는 매독의 전형적인 진행 과정 중 나타난 증상일 뿐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당신이 말한 두 가지 체계를 인정합니다.

-아닙니다. 모파상이 미친 것은 물질에 대해, 허무에 대해, 죽음에 대해서만 너무 날카로운 의식을 가졌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인 겁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현대인들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그는 자기 개인의 존재와 나머지 세상 사이를 절대적으로 분리시켰던 것이지요.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더 일반적인 얘기를 하자면 우리는 누구나 늙어서 죽습니다. 개개인에게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 문명 사회에서, 절대적이고 극단적인 이 생각은 점점 발전해서 우리 의식의 영역을 점차 채워가고 있으며 다른 어떤 것도 살아남을 여지를 남겨 주지 않습니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차츰 세상의 경계선이 분명해집니다. 욕망 그 자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고통,질투, 공포만 남아 있습니다. 특히 고통만 남아 있습니다. 무한한, 그래서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 어떤 문명도, 어떤 시대도 그들의 백성에게 그렇게 엄청난 양의 고통을 안겨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가 전례 없는 최악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정신 상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고통>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정확히 이 순간에, 사형 집행인이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피 묻은 끔찍스런 붕대를 흔들어 대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로베스 피에르의 머릿 속에는 고통 이외에 다른 어떤 생각이 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실패의 감정과도 다른 어떤 것. 틀림없이자신이 해야만 했던 일을 했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입니다. 막시밀리앙 로베스 피에르, 나는 그를 사랑합니다.

-적어도, 나는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죽지 않앗더라면 끝까지 싸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젊은 이들의 클럽,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휴가..그는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고,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사랑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사람이 거의 없는 고속도로에서 자신의 GTI205 철판 사이에서 검정색 양복과 노란색 넥타이를 피로 물들이면서도, 그의 가슴 속에는 투쟁이, 즉 투쟁의 욕망과 의지가 남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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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6. 27. 14:19




세상 모든 원소들의 백색소음
박정대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세상을 가져 온다

바나나가 그려진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열어 음악을 들으면 눈밭 위에 앉아 짹짹거리는 작은 새들의 소리처럼 그리운 소음

소음이 그리운 날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빠져나와 하루 종일 닉 케이브를 듣는다

닉 케이브라는 소음의 천사를 나는 예전에 알았다

그가 전직 천사였다는 것을 안다

너무 아름다운 노래 때문에 타락 천사가 된 그를 나는 인간적으로 듣는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소음 속에서 침묵을 추구한다

한없이 떠들어야지만 더욱더 견고한 고독이 완성되므로 여전히 사랑에 빠져 노래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다

왜 그가 타락 천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말해준다

사실 말은 필요 없는 것이다

세계가 우리의 비극을 감싸 안으므로 우리는 장엄하게 아름다운 비극이다

여기까지다, 시인이 할 일은 세상 모든 원소들을 백색소음에 데려다 주는 일

그 다음은 이 세계의 일, 모든 소리의 가청 주파수대를 의미하는 백색소음 속에서 시인은 침묵과 고독이라는 물질로 새로운 시의 원소를 만드는 연금술사

여기까지다, 여기까지가 침묵의 음악이고 그 이후는 침묵을 또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순간 누군가 안쓰럽게
이 시를 읽고 읽을 것이다

타락 천사이었거나
전직 천사였거나
아마도
당신이 음악이었거나





한 때, 너를 살게하는 것은 절망이었다. 삶을 마감하게 하는 절망이 아닌, 삶의 연장을 추동하게끔 하는 절망의 감염자였다.  대의를 위한 죽음이 너절한 그 무엇이 되고, 이 모든 소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 마냥 함구하는 풍경, 1970년과 2003년 그리고 2011년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는 이 풍경을 똑바로 응시하기 위한 절망. 죽는 순간까지 이 절망을 앓아야 한다. 이것이 너를 외롭게 할지라도, 네가 감내하는 고독은 고공의 크레인 위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투쟁을 고수하는 어떤 아름다운 이의 고독에 비할 바 없는, 아주 소소하고 사치스러운 고독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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