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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16

from 짧은말 2011. 8. 16. 13:06




 




오늘날 정신적 무성애자로서 유예된 삶을 지속한다는 것은 세속적 안정을 포기하는 것과 동시에 더이상 사회에서의 어떠한 지위도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돈을 더 벌지 못하느냐, 남들과 같은 인생의 경로를 밟지 않느냐하는 타박에 불과한 물음들, 혹은 제도의 바깥에서 그들과 같은 책을 읽고 생각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경멸이 뒤섞인 물음들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선택적 침묵이다. 언어는 점점 줄어들고 생각은 부단히 뇌릿속을 범람한다. 예외적 존재는 언어를 박탈당한다. 탄생부터 소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은 끊임없는 인정투쟁의 순간으로 도배되어 있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적 층위의 정체성을 가르는 것 또한 인정 투쟁의 일환이다. 이 치열한 투쟁의 장에서 조금이나마 비켜서는 행위는 허용 불가능한 일탈로 간주된다. 곧 예외적 존재가 되어 당신은 언어를 상실하는 것에 이른다. 비동일성에 근거한 저항은 세련되지 못한 핑계로 조롱받는다. 최근의 제도권에 젊은 열정을 투척하는 일이 바람직한가 하는 물음은 닿기도 전에 소거된다. 이쯤되면 차라리 언어를 박탈당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옳다라고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더이상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된 상황에 놓여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바꿔말하자면, 공통감각에 호응 불가능한 거대한 결핍이 신체와 정신을 차지한 채, 경제적 논리만이 그 텅빈 곳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기적 감각이라는 것은 네게 얼마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일인가. 그리하여 마음에 관한, 합리적 경제주의를 일관하다 결핍을 자각할 수 있는 신경조차도 끊긴다면 그것은 더더욱 반겨맞이해야 할 무음의 세계가 아닌가. 노이즈도, 혼란을 야기하는 어떤 음성도 네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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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83, Midnight city

from 짧은말 2011. 7. 20. 11:11

 


 



실질적으로 체험되지 않은 과거를 회상하도록 하는 음악은 일상의 악무한 속에서 폐기되어가는 정신의 패착을 지연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나는 80년대에 태어났고 유년기에 소닉유스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에 열광할 수 없었으며 그것을 접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자라났다. 그러므로, 2011년에 m83을 듣는다는 것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거칠게 써갈긴 노이즈의 서정시를 다시 읽어내려가는 것과 같다. m83은 여전히 마블발적 어법으로 그가 이룩한 슈게이징의 영역에 머물기 위하여  21세기적 세련미로 복고적 이질감을 정제하며 또 연마한다. m83은 그 영토에 계속 거주하여야만 한다. 

 Midnight City, 감정의 동요가 진행되는 밤의 어스름함이 물러가고 해가 뜨는 순간 모든 것이 정리되듯, 순간의 안정제는 트랙이 정지하는 동시에 약효를 상실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피치포크 따위의 매거진 등을 뒤지고 새로운 음악이며 밴드를 찾기에 혈안이 되는 것이다. 실로 무의미한 검색이다. 그 어떤 유의미한 행위로도 과거의 나를 만회할 수 없다. 또다시 밤은 찾아들고 새벽의 동이 터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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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6. 29. 11:03

 



Edward Hopper Took the Subway







-12월 31일 밤은 힘들었다. 마치 유리벽이 부서지듯이 내 속에 있는 무언가가 부서져 버리는 것을 느낀다. 분노에 사로잡혀서, 뭔가 하지 않읍면 안되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걸어다닌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게는 이 모든 시도들이 이미 실패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패, 사방에 실패만이 널려 있다. 오직 하나 자살만이, 닿을 수 없는 채로 저 건너편에서, 반짝거리며 내 마음을 끈다. 자정 무렵에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진 길과 같은 것을 느낀다. 내면에서도 무언가가 고통스럽게 꿈틀거린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은 전부 혼동하고 있는 거예요. 모파상의 광기는 매독의 전형적인 진행 과정 중 나타난 증상일 뿐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당신이 말한 두 가지 체계를 인정합니다.

-아닙니다. 모파상이 미친 것은 물질에 대해, 허무에 대해, 죽음에 대해서만 너무 날카로운 의식을 가졌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인 겁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현대인들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그는 자기 개인의 존재와 나머지 세상 사이를 절대적으로 분리시켰던 것이지요.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더 일반적인 얘기를 하자면 우리는 누구나 늙어서 죽습니다. 개개인에게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 문명 사회에서, 절대적이고 극단적인 이 생각은 점점 발전해서 우리 의식의 영역을 점차 채워가고 있으며 다른 어떤 것도 살아남을 여지를 남겨 주지 않습니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차츰 세상의 경계선이 분명해집니다. 욕망 그 자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고통,질투, 공포만 남아 있습니다. 특히 고통만 남아 있습니다. 무한한, 그래서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 어떤 문명도, 어떤 시대도 그들의 백성에게 그렇게 엄청난 양의 고통을 안겨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가 전례 없는 최악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정신 상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고통>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정확히 이 순간에, 사형 집행인이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피 묻은 끔찍스런 붕대를 흔들어 대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로베스 피에르의 머릿 속에는 고통 이외에 다른 어떤 생각이 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실패의 감정과도 다른 어떤 것. 틀림없이자신이 해야만 했던 일을 했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입니다. 막시밀리앙 로베스 피에르, 나는 그를 사랑합니다.

-적어도, 나는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죽지 않앗더라면 끝까지 싸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젊은 이들의 클럽,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휴가..그는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고,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사랑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사람이 거의 없는 고속도로에서 자신의 GTI205 철판 사이에서 검정색 양복과 노란색 넥타이를 피로 물들이면서도, 그의 가슴 속에는 투쟁이, 즉 투쟁의 욕망과 의지가 남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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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6. 27. 14:19




세상 모든 원소들의 백색소음
박정대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세상을 가져 온다

바나나가 그려진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열어 음악을 들으면 눈밭 위에 앉아 짹짹거리는 작은 새들의 소리처럼 그리운 소음

소음이 그리운 날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빠져나와 하루 종일 닉 케이브를 듣는다

닉 케이브라는 소음의 천사를 나는 예전에 알았다

그가 전직 천사였다는 것을 안다

너무 아름다운 노래 때문에 타락 천사가 된 그를 나는 인간적으로 듣는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소음 속에서 침묵을 추구한다

한없이 떠들어야지만 더욱더 견고한 고독이 완성되므로 여전히 사랑에 빠져 노래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다

왜 그가 타락 천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말해준다

사실 말은 필요 없는 것이다

세계가 우리의 비극을 감싸 안으므로 우리는 장엄하게 아름다운 비극이다

여기까지다, 시인이 할 일은 세상 모든 원소들을 백색소음에 데려다 주는 일

그 다음은 이 세계의 일, 모든 소리의 가청 주파수대를 의미하는 백색소음 속에서 시인은 침묵과 고독이라는 물질로 새로운 시의 원소를 만드는 연금술사

여기까지다, 여기까지가 침묵의 음악이고 그 이후는 침묵을 또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순간 누군가 안쓰럽게
이 시를 읽고 읽을 것이다

타락 천사이었거나
전직 천사였거나
아마도
당신이 음악이었거나





한 때, 너를 살게하는 것은 절망이었다. 삶을 마감하게 하는 절망이 아닌, 삶의 연장을 추동하게끔 하는 절망의 감염자였다.  대의를 위한 죽음이 너절한 그 무엇이 되고, 이 모든 소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 마냥 함구하는 풍경, 1970년과 2003년 그리고 2011년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는 이 풍경을 똑바로 응시하기 위한 절망. 죽는 순간까지 이 절망을 앓아야 한다. 이것이 너를 외롭게 할지라도, 네가 감내하는 고독은 고공의 크레인 위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투쟁을 고수하는 어떤 아름다운 이의 고독에 비할 바 없는, 아주 소소하고 사치스러운 고독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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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입력해 주세요.

from 짧은말 2011. 6. 20. 12:39

 





 -기나긴 고난의 경로를 통과한 후에야 구원은 온다.
이런 연유에서, 디스토피아는 희망의 역설적인 비전으로서 끊임없이 제시되는 것이다.





-우스개소리로, 박노자가 급진급진 열매를 먹었다고 하는데 그건 새삼 맞는 말일듯싶다. 2년전만해도 그는 차악으로서의 사민주의를 옳다고 여겼다.  혁명의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서서 이 폭력을 피부로 체감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급진적인 태도를 경계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아마도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에 이주하게 되면서 선진 노르웨이 내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자본주의 체제 내의 모순들을 적시하기 시작했던 모양. 여튼 그가 최근에 올린 포스트를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35697 보니 며칠전 누군가가 내게 건냈던 말이 생각이 났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럼 서로의 연인조차 공유하게 되는 거냐고 묻길래 그건 사적 자유의 영역이 아닌가하고 손사래를 쳤는데,

"꼭 혁명가만이 진정한 (비소유적인) 사랑을 할 줄 아는 게 아니지만, 대체로 공산주의적 혁명과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동질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공산주의란 사유와 이윤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고, 진정한 사랑은 소유욕과 독점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공산주의자만이 진짜 사랑을 할 줄 아는 게 아니지만, 공산주의자라면 적어도 자신의 소유욕에 대한 "거리 두기", 상대화, 궁극적으로 소멸 작업을 해야 할 듯합니다."

이 구절을 보니 자못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소유와 비소유라는 세속적 사랑의 잣대를 떠나- 바디우를 빌려 '진리를 생산하는 절차로서의 사랑'과 공산주의적 혁명이 결국에는 동일한 문제라고 설정하는 것. 진정한 공산주의자적 면모란 바로 이런 것임을 상기해두자.



-나는 간명하게 글을 쓸 줄 모른다. 글쟁이의 소양같은게 내겐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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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6. 4. 02:27

폐관수련이 필요하다. 트위터도 안부를 확인하는 용도로만 쓰도록 자제하는 것이 좋다. 나의 온갖 감정의 찌꺼기들이 착종된  파토스는 온전히 나만이 감당해야할 것이다. 모든 것이 지리멸렬한 밤. 착잡한 심정에 으레 찾는 책은 미니마모랄리아. 아도르노는 이 책에서 세상의 균열과 부조리와 고통과 슬픔과 우울을 전시하며 단번에 나같은 부류들을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과 연루시켜버린다. 그 특유의 견고하고 단조로운 문체는 담담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동원되지만 이것은 단순히 이론적 수사로 이해되는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슬픈 관조와 세상과의 거리두기.

" 반면, 억압받는 계급의 언어에는 지배의 상흔만이 새겨져 있다. 불구화하지 않은 자율적 언어가 사사로운 원한 감정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불편부당함을 약속해준다면 억압된 계급의 언어는 그러한 불편부당함이나 정의로움을 박탈당한다. 프롤레타리아의 언어는 배고픔에 의해 씌여진다. 가난한 자는 자신의 공복을 채우기 위해 언어를 씹어 먹는다. 그는 사회가 거부하는 강력한 자양분을 언어의 객관적 힘에서 기대하는 것이다. 그는 깨물어 먹을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입을 언어로 가득 채운다. 그런 식으로 그는 언어에 복수를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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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6. 1. 11:22

1.가끔 마음을 다잡는다고 걷어낸 절망은 완전소멸에 이르지않고 끊임없이 주변을 배회한다.
그러다 외압을 감당치 못한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목격된다. 
푸른 재로 산화한 그것을 차라리 내 한낱 죽음충동에 불과한 파토스에 대항하는데 실패한,
무참한 항거의 흔적이라 부르련다.

말간 허무와 공허를 곱씹는 것에 골몰하는 자세는 이 자본주의 디스토피아의 신경증을 견디는 나름의 삶의 형식이다
그래서, 나는 이 미친 세상을 아무렇지 않게 긍정적으로 살자라는 구호를 무슨 종교적 교리마냥 외치고 다니는
사람을 마주할 때 참을 수 없도록 구역질이 난다. 계급적인 것을 가감하고 진정한 인간의 평등을 좌시하자라는 이상적인 언어를 외치고 다니는 사람도 참을 수 없다. 나는 이만큼 가방끈이 길고 개념있는 인간이야 라고 여봐란듯이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에 관하여 구구절절 써내려가지만 그 이면에 가득찬 엘리트주의적 사고방식과 병적인 성적 취향과 저급한 오만과 비열함. 나는 썩 괜찮은 인간이죠라는 것을 계속해서 남에게 주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인간적인 허영.

이 모든 구역질이 치미는 것들.  나는 이에 대한 결벽증을 감내하지 못하고 언젠간 스스로 사회와 인생에서, 퇴장하게 될 것이다. 알 수 있다..


우엘벡이 너절하고 도저한 허무적 독백들을 늘어놓는 가운데, 그가 한사코 움켜쥐고자 한 무언가가 있다.
 당신과 내가 끝까지 경험할 수 없을, 끝까지 내 것이 되지 않을, 공백없는 진리와 완전한 인간의 감정. 
그 진실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지 말자. 



2. <무산일기>에 관한 평론가들의 한 줄 비평 중 인상에 남았던 말. "화면이 암전될 때 마음도 암전된다"
검은 화면 속, 소리없는 통곡과 분노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그것은 귀를 막아도, 막아도 스며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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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5. 17. 00:56




- 아무 힘이 없는 아름다움은 지성을 증오하는데, 왜냐하면 지성은 아름다움이 행할 수 없는 그것을 아름다움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을 무서워하고 파괴되는 것을 철저히 막는 생이 아니라, 죽음을 감내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유지하는 생이야말로 정신의 생인 것이다. 정신은 오직 절대적으로 찢겨져 있는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발견함으로써만 자신의 진리를 획득한다. 정신은, 어떤 것에 대해 우리가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거나 거짓이다. 이제 이로써 이것에 대해서는 다 마쳤다"라고 말하고서 그로부터 다른 어떤 것으로 넘어갈 때처럼, 부정적인 것을 외면하는 긍정적인으로서의 이런 권능이 아니다. 오히려 정신은 오직 부정적인 것을 대면하고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를 통해서만 이러한 권능인 것이다. 이 머무름은 부정적인 것을 존재로 바꿔놓는 마력이다ㅡ이 마력이란 앞에서 주체라고 일컬어졌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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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3. 13. 00:59


마음의 적을 둘 곳 없는 자에게는 글쓰기만이 영원한 고향이다. 날씨가 변할 즈음이면 으레 찾아오는 새로운 우울은 결국 나를 무감각한 인간으로 숙성시켰다.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감각의 둔화가 불행한 것만도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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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짧은말 2011. 3. 3. 11:02



" 이런 밤, 여기 실존하는 자연의 내부-self-는 환영적 표상들 속에서 주변이 온통 밤이며, 그때 이쪽에선 피 흘리는 머리가, 저쪽에선 또 다른 하얀 환영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가는 또 그렇게 사라진다.....

 무시무시해지는 한밤이 깊어가도록, 인간의 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 밤을 목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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